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트로이 전쟁 (문단 편집) == 실제 역사상의 트로이 전쟁 == 많은 이들이 트로이를 호메로스의 서사시 안에 존재하는 가상의 도시로 여겼지만 호메로스에 감명을 받고 트로이를 찾아내겠다고 결심한 [[하인리히 슐리만]]에 의해 트로이가 1870년에 유적이 발굴되었다.[* 이는 정확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트로이]] 항목 참조.] 슐리만은 자신이 발굴한 제2층의 트로이를 트로이 전쟁 시대의 트로이로 생각했으며 이곳에서 발견한 황금유물들을 '프리아모스의 보물'이라 부르며 빼돌리기까지 했지만, 후대 고고학자들의 발굴 조사 결과 슐리만의 착각이었다. 그러나 완전히 신화로만 생각하던 트로이 전쟁을 역사의 위치에 올려놓은 인물로서 절대 무시할 수는 없다. 처음에 생각했던 제2층이 트로이의 유물은 아니었으나 결국 그 장소에 트로이 전쟁이 있었던 것은 확인되었다. 트로이 전쟁이 과연 실제의 전쟁이었는지 역사학자들은 의구심을 품었지만 [[히타이트]] 제국의 수도 유적에서 발견된 대량의 외교문서를 통해서 트로이 전쟁에 대한 새로운 주장이 제기되었다. 히타이트 제국의 외교문서에 의하면 윌루사에 미케네인들이 쳐들어 왔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는데 학자들 중에는 히타이트 제국의 세력권인 윌루사가 곧 일리오스=트로이로 비정되고 있다. 그래서 여기에 [[미케네]]인들이 쳐들어와 약탈하고 불태운 것이 트로이 전쟁의 실체였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트로이 전쟁은 기원전 1250년 또는 기원전 1180년에 일어났던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적인 목적으로 일어난 전쟁이라는 분석도 있다.[* [[투키디데스]]가 처음 제기했었다.] 트로이는 입지적으로 험난한 [[다르다넬스 해협]]을 피해 [[소아시아]]로 육로수송이 가능한 요충지였기 때문에 이런 요충지를 차지하기 위해 [[아카이아]]인들이 쳐들어와 트로이를 정복한 것이 트로이 전쟁의 실체였다는 주장도 있다. 그리고 이 외에 거의 인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분석도 있는데, 트로이는 [[히타이트]] 세력권에서 큰 도시이므로 [[철기]]를 일부 사용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당시 그리스 주변에서 철은 '''금과 맞먹는 값어치를 지닌 꿈의 물질이었기에'''[* 오죽했으면 [[그리스 신화]]에서 최고신 [[제우스]]가 앉는 의자가 온통 철로 만들어졌다는 전승까지 있을 정도였다. 또한 트로이 전쟁보다 약 1세기 전의 시대가 배경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나안 전쟁]]을 묘사한 [[구약성경]]의 기록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복한 왕인 옥의 보물 중 하나가 바로 철로 만들어진 침대였다는 내용이 언급된다. 그만큼 철은 고대 지중해에서 매우 귀중한 물건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이를 약탈하기 위해 처음에는 [[히타이트]]를 치려고 했다가 국력으로는 게임이 영 안 될 것 같으니까[* 당시 히타이트는 최강대국 [[이집트]]의 자리를 위협하던 대국이었다.] 꿩 대신 닭 격으로 트로이를 쳤다는 분석이다. 이 주장이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제아무리 트로이가 히타이트 산하에서 큰 도시라 해도 히타이트가 [[철기]]를 '''내어줄 가능성은 전무하기 때문이다.''' 철기를 내어줬다는 건 현재 시각으로 보면 '''[[핵무기]][[핵우산|를 준 것]]'''과 다를 바 없다.[* 현대에서야 철은 쉽게 구할 수 있으며 철보다 더 중요한 석유나 우라늄같은 자원이 있기에 이런 가치는 없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문명의 격을 가르는 오버테크놀로지나 다름 없는게 철기였다. 철이 어째서 그 정도의 가치가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면 청동기 시대의 주 무기가 석기였다는걸 생각해보자.] 물론 철기가 아니라 철광석을 내어주었으며 트로이에서는 이것을 제련할 줄 몰라 창고에 처박아뒀었고 그리스는 제련을 할 줄 알았기에 그걸 뺏으려고 쳐들어갔다 식으로 설명하면 그런대로 말은 되지만, '''그럼 왜 그리스는 그리스 국내의 철을 제련해 쓰지 않고 굳이 다른 나라에 쳐들어가 뺏어와야 했느냐'''는 문제점을 안게 된다. 그러나 몇몇 역사학자들은 트로이 전쟁의 실제 가능성에 대해서 대단히 회의적이다. 물론 그에 해당되는 전쟁 자체는 역사상으로 존재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앞서의 주장들을 미뤄본다면 트로이 전쟁의 실체는 미케네인들의 [[약탈]]이나 소규모 정복전쟁이 호메로스에 의해서 극적인 드라마로 각색된 것이라고 보는 게 타당한 설명일 듯하다. 미케네인의 [[윌루사]] 침공은 기록이나 고고학적 증거로 보아 그런 사건이 존재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로 보이지만, 현재까지 발굴된 유적이나 유물 증거들만 놓고보면 신화에 나오는 것처럼 당대의 이름이 알려진 모든 문명권에서 대규모 군대를 파견한 세계대전급 규모는 되지 못했을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물론 [[청동기 시대]] 근동의 인구나 문명 기준, 그중에서도 비교적 약소 문명이었던 [[미케네 문명]]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큰 전투로 기억되었을 수 있다. 결국 관건은 평범한 수준의 전쟁이 서사시 덕분에 큰 사건으로 기억된 것인지, 일리아스의 묘사만큼은 아니라도 실제로도 두고두고 기억할 만한 큰 전쟁이었는지 여부인 셈이다. 한편, 2018년에는 파우사니아스가 언급했던 '트로이 전쟁의 생존자들[* 아가멤논에게 포로로 잡힌 트로이의 시민들]이 만든 고대 도시 테네아'의 유적이 확인되기도 했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11/14/0200000000AKR20181114125300009.HTML?input=twitter|기사보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